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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재] 도내동 은지 및 이축선생묘

작성자 : 고양문화원 날짜 : 23/06/25 21:59 조회 : 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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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6호

지정일 : 1999. 2. 1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산3-34(임), 847-3(답)

 

 

은지는 이축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면서 파 놓은 것으로 알려진 연못으로 1456년에 만들어졌으며 현재도 샘물에 의해 유지되어오고 있는 드문 연못이다.

 

현재 은지 연못의 총 규모는 약 2500여평이며 수초 등과 물방개, 잉어 등 여러 생물체들이 살고 있다. 이 연못은 기록에 의하면 조선조 초기의 문신이였던 망월암 이축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면서 파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못은 1456년에 만들어 졌으며 지금까지 540여년 동안 샘물에 의해 유지되어 오고 있는 드문 연못이다.

이축은 이곳에서 계유정란에 의해 쫓겨난 단종을 그리워하며 그에 대한 일편단심의 충의를 다짐하였다. 은지의 서남쪽 200m 부근에 위치한 이축선생의 묘소는 배 이천 서씨의 묘와 합부되어 있고 묘비, 망주, 상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소는 조선조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당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묘비와 문인석은 석물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은못(은무시,隱池洞)이라는 이름은 조선조 때의 충신 이축공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숨어 지내면서 판 연못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이축(1402~1473)은 고려말의 대학자이었던 목은 이색의 둘째 아들 인제 이종학의 손자로서, 세종과 문종 때의 광주판관 사헌부감찰 호조좌정랑 황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른지 얼마 후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고 김종서 등이 유폐되어 있는 영월을 향해 매일 망배하고 그의 처소에도 망월당이라느 옥호를 달아 놓을 정도로 전왕에 대한 충절이 깊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축은 이곳에 숨어 지내면서 연못을 하나 팠는데 그 연못의 이름을 ‘숨을 은(隱)’자, ‘못 지(池)’자를 써서 ‘隱池(은못이)’라고 하였다는 것이고, 거기에서부터 이 마을의 명칭이 유래하였다. ‘숨을 은(隱)“자를 쓰지 않고 ’은은(銀)‘자를 써서 ’銀池洞‘이라고 표기하는 사람도 있다.

 

흥도동사무소에서 화전 방향으로 이어진 도로상의 은못이 마을 입구에 위치하며, 연못의 총 규모는 약 2500여 평이다. 은지의 서남쪽 200m 부근에 위치한 이축 선생묘는 이천서씨의 묘와 합부되어 있으며 조선조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묘소에는 묘비, 상석, 장명등, 문인석 1쌍이 갖추어져 있다.  이축(1402~1473)은 고려말의 대학자이었던 牧隱 李穡의 둘째 아들 인재 이종학의 손자로서 세종과 문종 때의 광주판관, 사헌부감찰, 호조좌정랑,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