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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재] 박대립선생묘 및 신도비

작성자 : 고양문화원 날짜 : 23/06/25 22:09 조회 : 3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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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향토문화재 제20호

지정일 : 1986.6.16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산120,121(임)

 

 

박대립 (1512~1584)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수백(守伯), 호는 무위당(無違堂)이며 본관은 함양(咸陽)으로 돈령부정(敦寧府正) 세영(世榮)의 아들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중종 35년(154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양주의 교수(敎授)로 나갔다. 후에 태상참봉(太常參奉)이 되고 형조좌랑(形曺左郞)으로 재임한 당시에는 정실관계로 수 십 년 묵은 송사(訟事)를 판서에게 항변하여 종결지음으로써 영의정 심경원(沈庚源)의 추천을 받아 지평(持平)이 되었다. 그 뒤 대사간(大司諫),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 대사헌(大司憲),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등을 역임했다. 선조 12년(1579)에는 이조참판에서 형조판서로 특진 이조, 호조판서를 거쳐 우찬성(右贊成)이 되었으며 선조 15년(1582)에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겸임하고, 이어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내고 다시 우찬성을 역임했으며 좌찬성(左贊成)으로 치사(致仕)하였다.

 

묘는 통일로 숫돌고개에서 상촌마을 오금동에 남향으로 貞敬夫人 長水 黃氏의 묘와 합장되어 있다. 숙종 18년(1692)에 立石한 신도비는 팔작지붕형의 옥개와 운문이 조각된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다. 비문은 이정구가 글을 짓고, 권규가 전을, 5대손 경후가 글을 썼다.  박대립(1512~158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守伯, 호는 無違堂이며 본관은 咸陽으로 敦寧府正 朴世榮의 아들이다.

 

묘 앞 중앙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동자석 그리고 문인석과 망주석이 1쌍씩 배치되어 있다.

묘비의 규모는 높이가 170㎝, 너비가 70㎝, 두께가 2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