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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유산] 심희수 교지 및 묘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7호 지정일 : 1999. 2. 1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산406-1(임) 심희수(1548~1622)는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伯懼 호는 一松이며 본관은 청송이다. 명종 3년(1548)에 출생하여 광해군 14년(1622)에 돌아갔다. 자는 배구, 호는 일송이며 본관은 청송이다. 정자 건의 아들이다. 일찌기 노수신을 따라 천리학을 진도의 유배지에서 배웠으며 21세때에 성균관에 입학, 학생 대표로 제사에 참여했다. 선조 5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다. 이어 선위사를 거쳐 도승지, 형조판서, 대사헌,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글씨에 뛰어났고 상주 봉암사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정이다. 저서에는 일송집이 있다. 1613년에 만들어진 교지는 길이 298cm, 폭 37.5cm의 규모인데 재료는 한지와 무명을 사용하였다. 이 교지에는 1등에 5명, 2등에 14명, 3등에 28명이 녹선되어 있는데 심희수는 이산해, 이원익 등과 함께 2등에 속해 있다. 교지의 글은 목대흠이 만들고 심인보가 썼다. 묘는 원흥동 구석말 마을에 배 정경부인 광주 오씨의 묘와 쌍분을 이루어 위치하고 있다. 봉분 아래는 숙종 1년(1675) 3월 세운 묘비가 있는데 재료는 화강석이며 높이 132cm, 폭 50.5cm, 두깨 17cm의 규모이다. 묘비의 앞면에는 ‘의정부 좌의정 일송선생지묘 정경부인 광주오씨 부좌’라고 표기되어 있다. 봉분의 앞쪽에는 상석, 향로석, 혼유석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석물 이외에 봉분의 좌측에는 단이 하나 만들어져 있는데 1983년 세워진 오석의 비 앞면에는 ‘일타홍 금산이씨지단’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유시가 새겨져 있다. 봉분의 좌․우에는 망주석과 문인석이 세워져 있다.
2023/06/25, 고양문화원
[향토유산] 도내동 은지 및 이축선생묘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6호 지정일 : 1999. 2. 1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도내동 산3-34(임), 847-3(답) 은지는 이축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면서 파 놓은 것으로 알려진 연못으로 1456년에 만들어졌으며 현재도 샘물에 의해 유지되어오고 있는 드문 연못이다. 현재 은지 연못의 총 규모는 약 2500여평이며 수초 등과 물방개, 잉어 등 여러 생물체들이 살고 있다. 이 연못은 기록에 의하면 조선조 초기의 문신이였던 망월암 이축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거하면서 파 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못은 1456년에 만들어 졌으며 지금까지 540여년 동안 샘물에 의해 유지되어 오고 있는 드문 연못이다. 이축은 이곳에서 계유정란에 의해 쫓겨난 단종을 그리워하며 그에 대한 일편단심의 충의를 다짐하였다. 은지의 서남쪽 200m 부근에 위치한 이축선생의 묘소는 배 이천 서씨의 묘와 합부되어 있고 묘비, 망주, 상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묘소는 조선조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당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묘비와 문인석은 석물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은못(은무시,隱池洞)이라는 이름은 조선조 때의 충신 이축공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숨어 지내면서 판 연못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이축(1402~1473)은 고려말의 대학자이었던 목은 이색의 둘째 아들 인제 이종학의 손자로서, 세종과 문종 때의 광주판관 사헌부감찰 호조좌정랑 황해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른지 얼마 후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고 김종서 등이 유폐되어 있는 영월을 향해 매일 망배하고 그의 처소에도 망월당이라느 옥호를 달아 놓을 정도로 전왕에 대한 충절이 깊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축은 이곳에 숨어 지내면서 연못을 하나 팠는데 그 연못의 이름을 ‘숨을 은(隱)’자, ‘못 지(池)’자를 써서 ‘隱池(은못이)’라고 하였다는 것이고, 거기에서부터 이 마을의 명칭이 유래하였다. ‘숨을 은(隱)“자를 쓰지 않고 ’은은(銀)‘자를 써서 ’銀池洞‘이라고 표기하는 사람도 있다. 흥도동사무소에서 화전 방향으로 이어진 도로상의 은못이 마을 입구에 위치하며, 연못의 총 규모는 약 2500여 평이다. 은지의 서남쪽 200m 부근에 위치한 이축 선생묘는 이천서씨의 묘와 합부되어 있으며 조선조 전기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묘소에는 묘비, 상석, 장명등, 문인석 1쌍이 갖추어져 있다. 이축(1402~1473)은 고려말의 대학자이었던 牧隱 李穡의 둘째 아들 인재 이종학의 손자로서 세종과 문종 때의 광주판관, 사헌부감찰, 호조좌정랑,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향토유산] 효자동 박태성정려비 및 묘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5호 지정일 : 1999. 2. 1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 산15-1(임) 박태성은 조선조 후기의 효자로서 「인왕산 호랑이와 박효자의 전설」의 주인공으로 자는 경숙이며 본관은 밀양이다. 봉분옆에 호랑이의 묘라 전해오는 민무덤이 남아 있다. 한편 묘소 아래 50m 지점에는 박태성이 매일 찾아와 참배하던 아버지 박세걸의 묘가 위치해 있다. 오석의 비에는 ‘朝鮮孝子 朴公泰星 旌閭之碑’라 표기되어 있다. 대좌까지 갖추어진 이 비는 조선시대 후기 효자로 널리 알려진 박태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조선시대 고종 30년(1893)에 세워졌다. 효자비 뒤편 250m 지점에 위치한 박태성의 묘는 좌우에 선인 완산이씨와 선인 김해 김씨의 봉분이 있어 모두 3기이다. 봉분 앞으로는 상석 1기, 망주석 1쌍 그리고 작은 문인석 1쌍이 있으며 정조 2년(1778) 5월에 건립된 묘비에는 ‘有明朝鮮孝子通德郞密陽公泰星字景淑之墓’라 새겨져 있다. 봉분 옆에는 호랑이의 묘라고 전해오는 민무덤이 남아 있으며 그 옆에는 최근 만들어진 호랑이상이 있다. 박태성의 묘 50m 아래에는 효자 박태성이 매일 참배하던 아버지 朴世傑의 묘가 위치해 있다.
[향토유산] 한미산 흥국사 나한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4호 지정일 :1999. 2. 1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 203(종) 이 건물은 한미산흥국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나한전의 본 명칭은 칠성각으로 1867년에 중수한 건물이다. 정면에는 모두 3개의 문이 있으며 문살의 무늬가 매우 세밀하고 화려하다. 전안에는 1832년 제작된 탱화가 보관되어 있고 19세기 후반의 일반적인 건축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나한전 안에는 1832년에 제작된 탱화가 보관되어 있다. 건물은 광서 4년(1878)에 지어져 19세기 후반의 일반적인 건축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건물의 기둥은 사각으로 흘림이 거의 없는 둥근 기둥이며 기둥머리에 평방과 창방을 돌리고 그 위에 다포의 공포를 올렸다. 맞배지붕의 형태를 한 칠성각의 정면에는 [七星閣]이라 쓰여진 현판이 걸려 있는데 초서체로 쓴 뛰어난 필체의 작품이다. 이 현판은 조선조 후기의 김성근이 송판에 쓴 것이다. 건물의 측면에는 단청된 방풍판이 있으나 특별한 문양이나 조각이 보이지 않는다. 약사전에 비해 규모가 약간 작으며 전체적으로 동북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목조로 된 건물은 잘 다듬어진 화강암 재질의 기단석이 위에 세워져 있는데 정면으로 계단이 축조되어 있다 ※교통편 구파발 전철역에서 156번 버스, 의정부행 버스 흥국사입구 하차(10분 정도 소요) 도보로 15분 정도 소요
[향토유산] 강매동 석교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3호 지정일 : 1999. 2. 1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 1755년 영조연간에 발행된 『고양군지』에 의하면 당시에는 해浦橋라 기록하고 있는데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석교로서의 기록은 다리 난간에 음각된 江梅里橋 庚申新造라는 기록으로 1920년대에 신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신도시로 개발된 행신지구의 동쪽(방향) 끝에 경의선 강매역이 있는데 이 역의 남쪽에 봉대산 방향으로 가는 길이 있다. 길을 따라 봉대산 아랫부분을 돌아가면 제방이 있는데 이 제방 위에서 행주산성 반대방향으로 비포장도로를 따라 50m정도 가면 다리가 보인다. 강매동 석교는 옛날 고양의 일산, 지도, 송포 등 한강연안의 서부사람들이 서울을 오가던 교통로로 이용되었던 다리이다. 다리의 기본구조는 네모진 돌기둥 18개로 교각을 만들어 세우고 그 위에 장방형 교판석을 깔았다. 교각과 교각 사이에는 6~7개의 교판석이 2열로 놓여있는데 다리의 전체적인 모습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길게 이어진 형태이며 가운데부분이 양 옆보다 높아서 전체적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다. 강매동 강고산 마을 창릉천 위에 있다. ※교통편 강매역, 행신동 소만마을에서 강매동 강고산 마을행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강고산 마을에서 하차해 창릉천변 강매동 석교로 진입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