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의 충실한 문화지킴이 고양문화원
[향토유산] 이천우선샘묘 및 신도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7호 지정일 : 1986. 6. 16 소재지 :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산203(임) 방형묘로 貞敬夫人 여흥 민씨와 합장되었고 봉분은 20평 정도이며 길이 30m의 曲墻을 조성했다. 묘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과 1979년에 세운 묘비, 그리고 좌우에는 문인석을 배치했고 4단의 계단석을 놓았다. 이천우(? ~1417)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태조 이성계의 형인 李元桂의 아들이다. 고려말 공민왕 18년(1369) 東寧府의 수령으로 있다가 이성계의 휘하에 들어가 몇 차례 왜구를 물리쳤으며 1392년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웠다.
2023/06/25, 고양문화원
[향토유산] 경안군묘 및 임창군묘
고양시 향토문화제 제 5호 지정일 : 1986. 6. 16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65-2(임) 현재 경안군의 묘는 盆城郡夫人 許氏의 묘와 합장되어 있는데 다른 묘에 비해 높은 묘역을 만들었다. 묘 둘레의 뒤편은 후대에 증축된 것으로 보이는 붉은 벽돌의 曲墻으로 조성되어 있다. 묘 앞 우측에는 ‘朝鮮國 王孫 贈顯祿大夫 慶安君 兼五都衛都府總官 行承憲大夫 慶安君 諱檜之墓 盆城郡夫人 許氏부左’라 새겨진 묘비가 있다. 묘비는 숙종 30년(1704) 3월 건립한 것으로 이수와 장방형 비좌를 갖추었고, 총 높이는 196c, 두께는 26㎝의 규모이다. 임창군의 묘는 凝川郡夫人 박씨와 합부되어 있다. 봉분의 주위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과 망주석, 문인석이 1쌍씩 있는데 특히 장명등은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 하여 당시에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향토유산] 이성군묘(利成君墓)
고양시 향토문화제 제4 호 지정일 : 1986. 6. 16 소재지 :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31(임) 이성군의 봉분을 중심으로 昆山郡夫人 南平 文氏와 豊山郡夫人 安東 權氏의 봉분이 좌우에 있다. 명종 11년(1556)에 세운 대리석의 묘비는 ‘왕자이성군 증시장평공지묘’라 쓰여져 있는데 장방형의 비좌에 정교하게 조각된 이수를 갖추고 있다. 비문은 정사룡이 짓고 송인이 글씨를 썼으며 한경우가 전자를 썼다.
[향토유산] 계원군묘 및 신도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3호 지정일 : 1986. 6. 16 소재지 :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산83-3(임) 묘 앞에는 新舊 3기의 묘비와 상석, 장명등 및 망주석과 문인석 각 1쌍이 배치되었다. 좌측의 흰 대리석 묘비 앞면에는 ‘承獻大夫桂原君艤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신도비는 묘에서 산 아래 약 7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방형의 비좌 위에 흰 대리석 비신이 세워져 있다. 선조 15년(1582)에 건립한 것으로 앞면에는 ‘長敏公神道碑銘’이라 전자되어있다. 계원군 李艤(1469~1554)는 조선 중기의 학자, 종친으로서 자는 艤之이다. 제2대 정종의 4대손이며 백성군 이원의 아들이다. 4세때 이미 문자를 해득했고 일찍이 사서삼경에 통달한 학행으로서 계림부수에 봉해졌으며 연산군 8년(1502) 시예에 장원하여 명선대부, 이어 승헌대부에 승좌되었다. 중종 즉위년에 돈령부도정, 중종 26년(1531)에 계원군에 봉해졌다. 시호는 장민이다.
[향토유산] 성녕대군묘 및 신도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2호 지정일 : 1986. 6. 16 소재지 :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69-1(임) 현재 묘소 앞에는 비각과 함께 재실, 사당 등이 지어져 있다. 묘소에는 상석, 장명등, 문인석 1쌍 등이 있다. 3단의 장대석을 쌓았으며 묘의 주위로는 호석(護石)을 둘렀고 묘소의 좌우에는 석호(石虎)와 석양(石羊)이 배치되었다. 신도비는 태종 18년(1418) 4월에 세운 것으로 검은 돌 비신을 양 옆에 세운 화강암 우주석에 끼워 넣은 것이 특징적이다. 성녕대군은 조선 제3대 태종의 4째 아들로 태종 14년(1414)에 대군으로 진봉되었는데 14세 때 홍역을 앓고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