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의 충실한 문화지킴이 고양문화원
[향토유산] 기건선생묘 및 신도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22호 지정일 : 1986.6.16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산54(임) 기건은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공조전서(工曺典書) 면(勉)의 아들로 1390년에 태어나 1460년에 돌아갔다. 호는 청파(靑坡) 또는 현암(眩庵)이며 녹은 청백리(淸白吏)로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천성이 청렴, 강직했으며 독서, 학문을 좋아했다. 세종24년(1442) 평민에서 발탁되어 음사(蔭仕)로 지평(持平)이 된 후 병조, 형조, 이조의 참의를 거쳐 관찰사,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문종 원년(1451) 개성부 유수를 거쳐 단종 원년(1453) 대사헌이 되었으며 그간 외관(外官)으로 연안, 제주, 평안도 관찰사를 역임하며 청백리(淸白吏)로 이름이 높았다. 그 후 벼슬이 中樞院事)에 이르렀으나 세조가 즉위하면서 모든 관직을 그만 두었다. 세조가 다섯차례나 그의 집을 찾았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아니 하였다. 시호는 정무(貞武)이다. 묘소에는 묘비, 상석, 향로석, 장명등, 망주석 1쌍, 문인석 2쌍이 있는데 대부분이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고 문인석 1쌍만이 당대의 것으로 보인다. 신도비의 높이는 184㎝, 너비는 66㎝, 두께는 33㎝ 규모이다. 묘는 원당전철역에서 한양골프장 방향인 성사동 사근절 마을에 서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묘는 정부인 豊山洪氏와 합장되었으며 총 규모 21m 둘레의 원형묘이다. 봉분의 우측으로는 1966년에 새로 세운 吳億齡이 찬한 묘비와 최근 후손 기성도가 찬하고 세운 한글비가 세워져 있다. 묘소에서 약 300m 지점 아래에 위치한 신도비는 고종 16년(1879) 10월 건립한 것으로 팔작지붕형의 옥개와 장방형의 통대석 비좌를 갖추었으며 비신은 대리석이다. 신도비 구비는 신비의 앞 마당에 놓여져 있다.
2023/06/25, 고양문화원
[향토유산] 한계미선생묘 및 신도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21호 지정일 : 1986.6.16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산77-5(임) 한계미(1412~1471)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의 언니와 결혼하였다. 세종 20년(1438) 음보(蔭補)로 사용(司勇)이 되고 그 후 나주 판관(羅州判官), 형조도관좌랑(形曺都官左郞) 등을 역임하였다. 문종2년(1452)에 사은사(謝恩使)로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5년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하자 좌익공신(左翼功臣) 3등으로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가 되고 이어 동부승지(同副承旨), 우승지(右承旨)를 거쳐 형조, 호조의 참판사로 부임하고 이시애(李施愛)의 반란 때 평안도의 정병을 이끌고 가서 평정에 힘써 적개공신(敵愾功臣) 3등으로 우찬성(右贊成)에 올랐다. 이어 좌찬성(左贊成)으로 이조판서를 겸임하였다. 성종 1년(1470)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진봉되고 이듬해 좌리공신(左理功臣) 2등에 책록되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가 되었다. 시호는 문양(文襄祠)가 건립되어 있다. 묘는 관산동 시묘골 마을의 청주한씨묘역에 위치하며 왼쪽에 파평윤씨가 합장되어있는 단묘이다. 우측에는 1972년에 건립한 묘비가 있고 봉분 앞 중앙에는 당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백대리석 묘비가 세워져있다. 한계미선생의 신도비는 묘소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종2년(1471) 12월에 세운 것으로 이수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다. 비각은 최근 새로 지었다. 한계미(1421~1471)는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公甫, 본관은 淸州로서 관찰사 惠의 아들이다. 묘소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 묘비, 망주석과 문인석 1쌍이 있는데 상석과 망주석, 장명등은 근래에 만들어진 것이다. 묘소 주위에는 후대에 두른 화강암 재질의 호석이 둘러져있으며 봉분의 둘레는 총 28m이고 높이가 2m이다. 신도비의 크기는 총 높이 230㎝, 너비 66㎝, 두께 21㎝이다.
[향토유산] 박대립선생묘 및 신도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20호 지정일 : 1986.6.16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산120,121(임) 박대립 (1512~1584)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수백(守伯), 호는 무위당(無違堂)이며 본관은 함양(咸陽)으로 돈령부정(敦寧府正) 세영(世榮)의 아들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중종 35년(154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양주의 교수(敎授)로 나갔다. 후에 태상참봉(太常參奉)이 되고 형조좌랑(形曺左郞)으로 재임한 당시에는 정실관계로 수 십 년 묵은 송사(訟事)를 판서에게 항변하여 종결지음으로써 영의정 심경원(沈庚源)의 추천을 받아 지평(持平)이 되었다. 그 뒤 대사간(大司諫), 함경도 관찰사(咸鏡道觀察使), 대사헌(大司憲),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등을 역임했다. 선조 12년(1579)에는 이조참판에서 형조판서로 특진 이조, 호조판서를 거쳐 우찬성(右贊成)이 되었으며 선조 15년(1582)에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겸임하고, 이어 판돈령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내고 다시 우찬성을 역임했으며 좌찬성(左贊成)으로 치사(致仕)하였다. 묘는 통일로 숫돌고개에서 상촌마을 오금동에 남향으로 貞敬夫人 長水 黃氏의 묘와 합장되어 있다. 숙종 18년(1692)에 立石한 신도비는 팔작지붕형의 옥개와 운문이 조각된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었다. 비문은 이정구가 글을 짓고, 권규가 전을, 5대손 경후가 글을 썼다. 박대립(1512~158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守伯, 호는 無違堂이며 본관은 咸陽으로 敦寧府正 朴世榮의 아들이다. 묘 앞 중앙에는 묘비와 상석, 향로석, 동자석 그리고 문인석과 망주석이 1쌍씩 배치되어 있다. 묘비의 규모는 높이가 170㎝, 너비가 70㎝, 두께가 21㎝이다.
[향토유산] 박세영선생묘 및 신도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19호 지정일 : 1986.6.16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 산120(임) 묘는 통일로 숫돌고개 너머인 오금동에 남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봉분은 八角墓로서 정경부인 光州 金氏와 합장되어 있다. 묘 앞의 좌측으로는 무인석이 그리고 우측에는 문인석이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묘소 앞 100m 지점에 위치한 신도비는 장방형의 碑座 雲紋과 학이 조각된 이수를 갖추었으며 선조 15년(1582)에 세워진 것이다. 박세영은 조선조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경인(景仁)이고 본관은 함양(咸陽)으로 좌찬성을 지낸 박대립(朴大立)의 아버지이며 돈령부정(敦寧府正)을 역임하였다. 아들의 명성으로 인하여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 좌찬성에 증직(贈職)되었다. 묘소에는 묘표, 묘비, 상석, 향로석 및 동자석 1쌍과 문인석 및 무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묘 바로 앞에는 기록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멸된 묘표가 있는데 크기는 높이 120cm, 폭 50cm 두께 16cm이다. 신도비의 규모는 높이가 210cm, 폭 73cm, 두께는 24cm이다.
[향토유산] 김주신선생묘 및 신도비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18호 지정일 : 1986.6.16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26-1(임) 김주신(1661~1721)은 조선조 후기의 문신으로 숙종(肅宗)의 장인이다. 자(字)는 하경(廈卿), 호(號)는 수곡(壽谷), 세심재(洗心齋)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다. 판서(判書) 김남중(金南重)의 손자(孫子), 생원(生員) 일진(一振)의 아들로서 박세당(朴世堂)의 문인이다. 숙종(肅宗) 22년(1696)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여 이듬해 장원서별검(掌苑署別檢)이 되었다. 숙종(肅宗) 28년에 순안현령(順安縣令)으로 딸이 숙종(肅宗)의 계비(繼妃) 즉 인원왕후(仁元王后)가 되자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고 이어 영돈령부사(領敦領府事)에 이르러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에 봉해졌다. 도총관(都摠管)으로서 상의원(尙衣院)․장악원(掌樂院)의 제조(提調) 및 호위대(扈衛大將)을 겸임하였다. 저서(著書)로 [거가기(居家紀)], [수사차록(隋事箚錄)], [수곡집(壽谷集)] 등이 있으며 시호는 효간(孝簡). 묘는 대자동 대자골에 위치해 있으며 가림부부인(嘉林府夫人) 조씨(趙氏)와 부좌(祔左)되어 있다. 호석을 두른 봉분을 중심으로 벽돌, 기와를 사용한 운치있는 곡장(曲墻)이 조성되어 있다. 묘 앞 우측에는 옥개석을 갖춘 묘비가 있는데 영조 10년(1734) 3월에 세워진 묘비는 최규서(崔奎端)가 짓고 서명균(徐命均)이 썼으며 갓형의 두부와 기단이 갖추어져 있다. 김주신선생의 신도비는 영사정 건물의 왼쪽에 위치해 있다. 김주신(1661~1721)은 조선조 후기의 문신으로 숙종의 장인이다. 묘소에는 최근 조성된 묘비, 상석, 향로석과 당대의 장명등,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이 있다. 호석을 두른 봉분을 중심으로 벽돌, 기와를 사용한 곡장이 조성되어 있다. 묘비의 크기는 높이 100㎝, 너비 65㎝, 두께 33㎝이다. 신도비는 화강석 재료로 장방형의 비좌와 옥개를 갖추었고, 비의 총 높이는 300cm, 폭은 95cm, 두께는 45cm의 규모이다.